11월, 2011의 게시물 표시

[청구야담][4th]이여송을 훈계한 노인(老翁騎牛犯提督)

  선조 시절 임진왜란 때문에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황제의 명령을 받아 우리나라를 도우러 왔었다. 이여송은 평양에서 승리를 거두고 성 안으로 들어가 쉬었다. 그런데 이여송은 평양의 경관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다른 마음을 품어, 선조를 설득해 그 곳에서 살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어느 날 이여송은 대동강 옆의 연광정에서 수많은 부하들을 데리고 잔치를 열었다. 그 때 강변의 모래사장을 검은 소에 탄 노인 한 명이 지나갔다. 보초병들이 큰 소리로 노인이 지나가지 못하게 막아섰으나, 노인은 그것을 다 들으면서도 못 들은척 하며 소고삐를 잡고 천천히 지나갔다. 이 모습을 보고 이여송이 몹시 화를 내며 그 노인을 잡아오라 일렀다. 그러나 소가 느릿느릿 걷는데도 도저히 병사들이 따라잡지를 못했다. 이여송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직접 천리마를 타고 칼을 찬 채 노인의 뒤를 쫓았다. 소가 바로 앞에 보이는데다 말이 나는 듯이 달리는데도 노인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노인을 따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몇 리를 가서 한 산촌으로 들어가자, 노인이 타고 있던 검은 소가 시냇가 버드나무에 매여 있었다. 이여송은 노인이 이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에서 내려 검을 차고 들어갔다. 노인은 마루 위에서 일어나 이여송을 맞이하였다. 이여송이 화가 나서 꾸짖었다. [너는 어떤 늙은이길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이리 건방지느냐! 나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백만 군대를 거느리고 너희 군대를 구하러 왔다. 네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건방지게 소에 탄 채 우리 군대 앞을 지나가느냐? 너의 죄는 죽어 마땅하다.]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비록 산촌의 노인네이나 어찌 장군의 위대함을 모르겠습니까? 오늘 제 행동은 오직 장군을 누추한 이 곳에 모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게 간절한 부탁이 있는데 장군께 말씀 드릴 방법이 없어서 이런 계책을 쓴 것입니다.] 이여송이 물었다. [부탁이 무엇이냐? 말해보거라.] 노인이 말했다. [저에게 불초자식이 둘이 있는데, 글 읽고 농사...

[청구야담][3rd]여자의 한(洪川邑繡衣露踪)

  부제학 이병태가 임금님의 명을 받아 경기도 동쪽과 강원도를 암행어사로서 순찰하게 되었다. 강원도 홍천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읍내와 거리가 10리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홍천은 순찰 구역이 아니었기에 이병태는 그냥 지나가려 하였다. 그리하여 한 마을 앞에 도착했는데, 몹시 배가 고파 어느 집 문 앞에서 밥을 구걸했다. 그러자 한 여자가 나왔다. [남자가 없는 집이라 무척 가난합니다. 집에 시어머니가 계시는데도 아침 저녁을 굶고 있는데 나그네에게 줄 밥이 있겠습니까?] 이병태가 물었다. [남편은 어디에 갔습니까?] 여자가 말했다. [알아서 어디 쓰시려고 하십니까? 우리 남편은 바로 이 읍의 이방인데, 요망한 기생에게 홀려 어머니를 박대하고 아내를 쫓아냈습니다.] 여자가 이렇게 말하며 끊임 없이 원망의 말을 쏟아내자 방 안에 있던 노파가 말했다. [며늘아, 무슨 이유로 쓸데 없는 말을 해서 남편의 흉을 보느냐? 그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니?] 이병태가 그 모습을 보며 몹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는 읍내로 들어가 이방을 찾아갔다. 마침 시간이 낮 12시였다. 이방의 집에 들어서니 이방이 마루 위에 앉아 점심밥을 먹고 있었고, 그 옆에는 기생이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이병태는 마룻가에 턱 걸터 앉으며 말했다. [나는 서울에서 온 과객이오. 우연히 이 곳까지 오게 되었는데 밥 한그릇 얻어 요기라도 때울 수 있게 해주시오.] 그 당시는 전국에 흉년이 들어 조정에서 쌀을 나누어 주어야 할 정도로 힘든 시절이었다. 이방은 한참 동안 이병태를 아래 위로 훑어 보더니, 종을 불러 시켰다. [조금 전에 새끼 낳은 개에게 주려고 쑤었던 죽이 남아 있느냐?] [있습니다.] 이방이 말했다. [이 거지놈에게 그 죽이나 한 그릇 주어라.] 조금 있자 종이 술지게미와 쌀겨를 넣어 끓인 죽 한 그릇을 가져와 이병태의 앞에 던졌다. 이병태가 분노하여 외쳤다. [그대가 비록 넉넉하게 살고 있다한들 한낱 이방일 뿐이고, 내 비록 구걸하고 있다한들 양반이다. 양반인 내가 밥...

[청구야담][2nd]귀신의 구슬(鬼物每夜索明珠)

  횡성 읍내에 한 여자가 살았는데, 시집을 간 뒤 갑자기 매일 밤 어느 남자가 들어와 강간을 해댔다. 여자는 온 힘을 다해 거부하려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남자는 매일 밤마다 반드시 찾아왔는데,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남자를 보지 못했다. 심지어 남편이 있을 때도 여자를 강간했는데, 매번 그 고통이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여자는 그 남자가 귀신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딱히 물리칠 방도가 없어 끙끙 앓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며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았는데, 묘하게도 여자의 5촌 숙부를 보면 밖으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여자가 숙부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 숙부가 말했다. [그러면 내일 그 놈이 오거든, 몰래 무명실을 바늘에 꿰어 놨다가 그 놈 옷깃에 꿰매버리거라. 그러면 그 놈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겠지.] 그래서 여자는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다음날 그 계책에 따라 여자는 바늘에 실을 매어서 남자의 옷소매 아래에 찔러 두었다. 여자가 소리를 치자 그녀의 숙부가 들어왔고, 귀신은 놀라 달아났다. 그러자 무명실 뭉치가 슬슬 풀리기 시작했고, 숙부는 그 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가만히 따라가보니 실이 지하로 들어가 있었기에 땅을 파 봤더니, 그 안에는 썩은 나무 밑둥이 하나 있었다. 밑둥 아래 실이 매여져 있었고, 밑둥 윗머리에는 총알만한 크기의 보라색 구슬이 하나 있었는데 그 광채가 눈부셨다. 숙부는 구슬을 뽑아 주머니에 넣고, 그 나무 밑둥은 불에 태워 버렸다. 그 이후 귀신은 여자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밤, 숙부의 집 앞에 어떤 이가 찾아와 애걸하였다. [그 구슬을 제발 돌려주세요. 만약 돌려만 주신다면 부귀공명이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숙부는 구슬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 사람은 밤새도록 빌다가 갔는데, 며칠 동안 계속 이렇게 찾아왔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또 와서 말했다. [그 구슬은 저에게 무척 소중한 것이지만, 당신에게는 그렇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

[청구야담][1st]수령의 아이를 가르친 중(敎衙童海印僧爲師)

  합천 사또 아무개는 나이가 60이 되도록 아들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외아들을 지나치게 아끼고 글조차 가르치지 않아 아이가 13살이 되었는데도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를 수준이었다. 그러던 도중 전부터 사또와 친하게 지내던 해인사의 큰 스님 한 분이 관청에 찾아와 수령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이가 이미 다 자랐는데 아직도 글조차 못 읽으니 나중에 크면 어떻게 하려고 하십니까?] [글을 가르치려고 해도 워낙 건방져서 말을 듣지를 않습니다. 매를 들기에는 마음이 약해져서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후회가 막심합니다.] [사대부 집안의 자제는 어릴 적에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세상에서 버림 받은 사람이 됩니다. 그저 오냐오냐 하면서 공부조차 시키지 않았으니 이것이 옳은 것입니까? 아드님의 사람됨을 보니 어떤 일이든 하기만 하면 할 수 있을 터인데 이처럼 포기하시다니 안 될 일입니다. 소승이 가르쳐 볼테니 사또께서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스님의 뜻을 몰라 부탁할 엄두를 못 냈지, 전부터 원하던 일입니다. 스님께서 만약 그 아이를 깨우쳐 지식의 길로 인도하여 주신다면 그만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살리고 죽이는 것은 스님의 마음대로 하시고, 무조건 엄하게 공부를 시키십시오." 라는 내용의 문서를 만들어 도장을 찍은 뒤 소승에게 주십시오. 또 일단 절로 데려간 후에는 결코 집에서 연락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옷과 먹을 것은 소승이 마련할테니 만약 아이에게 보낼 것이 있다면 제 제자들이 오갈 때 저에게 직접 보내서 제 허락을 받도록 하십시오. 알아 들으시겠습니까?] [예,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사또는 즉시 스님이 말한대로 문서를 만들어 주고, 그 날로 아이를 절에 보낸 뒤 연락을 끊었다. 아이는 버르장머리가 없어 절에 간 후에도 이리저리 쏘아다니며 늙은 중들을 멸시하고, 욕을 하며 뺨까지 때리는 등 못하는 짓이 없었다. 하지만 큰 스님은 이를 보면서도 마치 못 본 것처럼 아이가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