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11의 게시물 표시

[청구야담][7th]병자호란을 예언한 이인(覘天星深峽逢異人)

  서울의 한 선비가 함경북도에 갔다가 산 속의 지름길로 와서 하루만에 강원도 이천 즈음까지 이르렀는데, 날이 이미 저물고 있었다. 사방은 산으로 둘러 쌓이고 큰 나무가 높이 솟아 아직 낮인데도 호랑이와 표범이 으르렁대고 이리와 여우가 뛰어다녔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봐도 사방이 고요하고 인적이 없었다. 선비가 사람 사는 집을 찾아 돌아다니다 문득 큰 돌을 보게 되었는데, 돌 가운데가 열려 있어서 마치 돌로 만든 문 같았다. 큰 강이 그 가운데에서 흘러나오며, 때때로 부추 잎이 떠내려 왔다. 선비가 말했다. [이 안에 반드시 사람이 살 것이다. 아마 무릉도원이나 신선이 사는 곳일게야!] 선비가 시종에게 헤엄쳐 들어가도록 시켰다. 한참 있으니 시종이 작은 배를 타고 왔다. 선비도 그 배에 타서 노를 저어 강을 거슬러 가다 물이 그친 곳에 배를 세우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다 어떤 곳에 도착했는데, 그 곳에는 민가 수백채가 있었다. 산은 높고 골짜기는 깊어 세상 모습과는 전혀 달랐고, 마을이 맑고 깨끗해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왔는데 옷이 옛날 옷이었고 얼굴은 세속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노인이 선비를 맞이하며 말했다. [이 곳은 깊숙하고 조용한 곳이라 인간 세게와 통하지 않은지 벌써 백년이 넘었소. 세상에서 이 곳을 아는 자가 없을 터인데 그대는 어떻게 이 곳에 오셨소?] 선비가 산길을 걷다 길을 잃었다고 말하자 노인은 그를 맞아들이고 저녁밥을 먹였는데, 산나물과 채소 등은 결코 세간에서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노인과 선비는 같은 방에 누워 잠을 자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인이 말했다. [나의 몇대 선조님이 더럽고 시끄러운 세상을 싫어하여 동지 5, 6인을 거느리고 이 곳에 자리 잡은지 거의 백여년이 흘렀소. 한 번도 이 산 밖으로 나가본 적 없이 아들, 딸 낳고 서로 시집, 장가보내서 지금은 수백채의 집이 있는 마을이 되었소. 밭을 갈아서 먹고, 베를 짜서 옷을 입으...

[청구야담][6th]원한을 풀어준 사또(雪幽寃夫人識朱旂)

  옛날 밀양 사또가 중년에 아내를 잃었다. 그에게는 단지 첩과 며느리,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딸만 있었다. 딸은 태어난지 몇개월만에 어머니를 잃고 유모 손에서 자라서, 유모를 어머니처럼 대했다. 딸은 유모와 별당에서 살았는데, 밀양 사또는 이 딸을 끔찍하게 아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딸과 유모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읍내 마을들을 두루 뒤졌으나 그들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사또는 놀라서 정신을 잃더니, 미쳐버려서 껄껄 웃기도 하고 마구 떠들어 대다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이에 부득이하게 사또직을 그만두고 서울로 돌아왔는데, 그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 후 밀양 사또가 된 자들은 부임하는 그 날 모두 죽었다. 서너명이 이렇게 급살을 맞으니 사람들은 모두 밀양 관가를 흉가로 생각해서 밀양 사또 되기를 꺼렸다. 아무리 밀양 사또를 임명하려고 해도 그 곳에 가기를 원하는 자가 없자 조정에서는 이 일로 크게 근심하였다. 그래서 어느날 모든 관리와 전직 관리들을 대궐 안에 모두 불러 지원자를 찾기로 했다. 그 때 한 무관이 있었는데, 그는 금군으로 오래 근무하다 무신 겸 선전관을 역임하여 겨우 6품에 올랐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셔 관직을 그만둔 지 20여년이 된 사람이었다. 나이가 60에 가까웠는데 춥고 배고픈 생활을 했고, 옷 한 벌로 10년이 넘도록 살면서 밥도 사나흘에 한 끼를 간신히 먹을 정도였다. 그 탓에 문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명사나 재상들 중 얼굴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그가 밀양 사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자기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지원하고 싶은 마음은 절실한데 죽는 것이 무서워서 차마 갈 수가 없구려!]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죽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비록 부임하는 날 죽는다고 해도 사또라는 명예는 얻을 것이고, 만약 죽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주저하지 말고 지원하십시오.] 무관이 생각해보니 아내의 말이 맞았다. 그래서 대궐에 나아...

[청구야담][5th]바람을 점친 사또(貸營錢義城倅占風)

  이익저는 경상북도 의성의 사또였다. 하루는 잔치를 벌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때는 여름철이었는데, 갑자기 미친듯이 바람이 휘몰아치고 지나갔다. 이익저는 급히 잔치를 그만두게 하고 감영으로 가서 감찰사를 만나 돈 5천냥을 꿔서 그 돈으로 햇보리를 샀다. 그 해는 풍년이 들어 보리 값이 무척 쌌다. 그는 보리를 사서 각 동에 나누어 잘 봉해두고 동네 사람들에게 그것을 지키게 하였다. 7월 초 어느 저녁 이익저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심부릉종을 불러 후원에 가서 풀잎 하나를 따오게 했다. 그리고 말하기를 [그럼 그렇지! 역시 생각했던 대로구나!] 라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 난데없이 혹독한 서리가 내려 초목이 모두 시들어 못 쓰게 되어 버렸다. 그 해 가을 영남 전체의 들에 푸른 초목이 하나도 없고 죄다 말라 죽은 곡식 뿐이었다. 조정에서는 백성들을 위하여 비축한 곡식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곡식을 나누어 주어도 곡물 값은 계속 뛰어올라 초여름에는 3, 4전 하던 보리 한 가마 값이 무려 300전 가까이 치솟았다. 이익저는 보관해 두었던 보리로 의성 사람들을 구하였고, 나머지 보리는 내다 팔아 꾸어왔던 5천냥을 모두 갚았다. 이는 이익저가 바람을 보고 앞일을 점치는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익저는 이웃 읍의 사또로 옮겨 갔는데, 그 때 감찰사는 조현명이었다. 이익저가 일이 있어 감영에 가서 감찰사를 알현하는데, 수염과 머리카락이 단정하지 않고 마구 헝클어져 머리카락이 망건 밖으로 삐져나올 정도였다. 이익저가 물러나자 감찰사는 이익저를 따라온 아전을 잡아들어 사또의 모습이 흉하도록 가만히 있던 죄를 꾸짖었다. 그러자 이익저가 감찰사를 다시 뵙기를 청하고 들어가 사죄하며 말했다. [제가 늙고 기운이 다 되어서 수염과 머리카락을 미처 정리하지 못해 윗분께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제가 지은 죄를 알겠습니다. 제가 지은 죄를 알겠습니다. 이 같은 죄를 짓고 어찌 사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임금님께 이를 고해 저를 파면시켜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