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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야담][28th]퇴계를 낳은 산실(降大賢仙娥定産室)

  퇴계 이황 선생의 외할아버지는 경상도 상주에 살았다. 집이 부유하고 그의 사람됨이 후덕하여 조화를 이루었으니, 고을에서는 그를 영남의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이 몹시 불고 눈이 많이 내린 엄동설한이었다. 퇴계 선생의 외할아버지 댁 문 밖에서 한 아병을 앓는 여자가 남루한 옷을 입고 하룻밤 재워 주기를 간청하였다. 그녀의 모습과 행동거지가 어찌나 흉악하고 추하던지, 사람들은 모두 코를 막고 얼굴을 돌렸다. 온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손을 내저어 그녀를 몰아 쫓아내고, 문 밖에서 한 발자국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자 퇴계 선생의 외할아버지가 말하였다. [그 여자를 쫓아내지 말거라. 저 여자가 비록 안 좋은 병을 앓고 있다지만, 날이 저문데다 이런 엄동설한에 어찌 사람을 내쫓는단말이냐? 만약 우리 집에서 이 사람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어느 집에서 받아주겠느냐.] 밤이 깊어지자 그 여자는 추워 죽겠다고 울부짖었다. 노인은 차마 그 모습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 그녀를 자신의 방 안으로 들여 윗목에서 자게 하였다. 그 여자는 노인이 잠든 틈을 타 조금씩 아랫목으로 내려오더니, 발을 노인의 이불 속에 넣기도 하였다. 그 때마다 노인은 잠에서 깨어나 양손으로 조심스레 그 여자의 발을 들어 이불 밖으로 내놓았는데, 그것이 서너차례 이어졌다. 날이 밝자 그 여자는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대로 가버렸다 며칠 뒤 다시 왔다. 하지만 노인은 조금도 안 좋은 기색은 내비치지 않고 여전히 여자를 자신의 방에서 재웠으니, 온 집안 사람들이 이 일을 두고 몹시 걱정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 여자가 다시 찾아왔는데, 갑자기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이전에 문둥병 걸리고 남루한 차름새는 온데간데 없었다. 노인 역시 놀라서 물었더니 여자가 대답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천상의 선녀입니다. 잠시 선생님 댁에 들러 선생님의 마음가짐을 시험해 보았을 뿐,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노인이 놀라서 선녀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니 여자가 말했다. [저번에...

[청구야담][27th]무릉도원을 찾은 권진사(訪桃源權生尋眞)

  백문 밖에 사는 권진사는 어린 나이에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공부에는 뜻이 없고 오로지 놀러다니기만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사마천처럼 세상을 유람하는 풍취가 있다고 자부하였다. 그는 전국을 두루 돌아다녀 안 가본 곳이 없었으며, 명산대천과 경치 좋고 조용한 곳은 모조리 찾아갔고 어떤 곳은 두세번 가기도 하였다. 그가 어느날 춘천 기린창에 갔는데, 그 날은 마침 장날이었다. 권진사가 주막에 앉아 있는데 약립을 쓰고 소를 탄 어떤 사람이 주막에 오더니 그 곳의 주모에게 물었다. [저 방 손님은 어떤 양반이오?] 주모가 말하였다. [저 분은 서울에 사시는 권진사님입지요. 전국 팔도를 두루 돌아다니며 유람하지 않은 곳이 없는데, 저희 집에도 3번이나 오셨기에 편히 지내고 계십니다.] [저 양반이 잘 아는 게 있소?] [풍수지리학에 꽤 통달하셨지요.] [그럼 내가 혹시 저 분을 좀 모셔갈 수는 없겠소?] [아마 괜찮을 겁니다.] 잠시 뒤 주모가 방에 들어가 권진사에게 고했다. [어느 마을에 사는 첨지가 진사님의 재주를 듣고 지금 진사님을 모셔가겠다고 청하고 있습니다. 진사님께서는 의심하지 마시고 잠시 다녀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권진사는 주막에만 며칠을 있어 심심했기에 바로 대답했다. [이 곳에서 멀지만 않으면 한 번 놀고 오는 것을 내 어찌 마다하겠소?] 이에 첨지라는 자가 와서 권진사를 뵙고 말하였다. [제가 진사님의 명성을 들은지 오래입니다. 제가 지금 소를 타고 왔으니 잠시 누추한 제 집으로 가시는 게 어떠실지요?] 권진사가 물었다. [첨지의 집이 이 곳에서 몇 리나 되오?] [이 곳에서 30리 밖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같이 소를 타고 가게 되었는데, 첨지는 고삐를 잡고 뒤에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정오 무렵이었다. 타고 있던 소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걸었다. 대략 3, 40리쯤 갔을 때 권진사는 첨지에게 물었다. [영감께서 사시는 마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구려.] [제가 사는 곳은 아직 멀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몇...